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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3일 ~ 2월 29일 주간 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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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순서
 - 사도신경, 찬송( 545장 ), 기도, 말씀, 기도제목 나눔(헌금) 및 합심기도. 주기도문

2020216일 주일설교

5:1~9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창시절이나 군대에서 ‘선착순’이라는 것을 한 번 즈음은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선착순은 학창시절이나 군대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선착순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학교에는 성적으로 줄을 세웁니다. 직장에서도 직원들을 점수로 평가합니다. 문제는 교회도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 크기로 교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또 교인들 사이에서도 사회에서 성공하면, 축복받았고, 신앙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실 당시의 세상도 오늘날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은 예루살렘성 양의 문 옆에 있는 “베데스다”라고 하는 이름의 연못입니다. “베데스다”라는 이름의 뜻은 ‘은혜의 집’, ‘자비의 집’ 입니다. 연못의 이름은 천사가 가끔 연못의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때 누구든지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지 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움직이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는 동작이 빠른 일등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시기 전에 베데스다를 먼저 방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서른여덟 해 된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이 물음에 대한 답은‘주여 하루빨리 낫기를 원합니다. 내 병을 고쳐주시옵소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병자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 보다 먼저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곳에 있습니다”서른여덟 해 된 병자는 예수님께 낫게 해 달라는 ‘소원’ 대신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몸의 질병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이런 울분과 분노의 마음이었습니다. 매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서른여덟 해 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 질병을 고칠 수 있을까요? 
  믿음만이 가능합니다. 불평을 늘어놓는 서른여덟 해 된 병자에게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말씀은 ‘네 불평의 자리에 누워있지 말고, 일어서서 믿음의 길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믿음”은 명사가 아닙니다. “믿음”은 동사입니다. 믿음이란, 시시각각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하셨을 때, 누가 그 순간에 과감하게 자리를 들고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있었는데 말입니다.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지만, 명령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서른여덟 해 된 병자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결단만이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구원받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선착순’으로 몇 사람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일어나 믿음의 길로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눔질문)  내가 지금 일어나야 할 불평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나는 지금 주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믿음의 결단을 하며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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